2024年5月3日金曜日
市井の漱石論 韓国語バージョン その2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의 주인공 나가이 다이스케는 당시로서는 중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이에 일을 하지 않고, 지금으로 치면 니트족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귀족도 아닌 일반 시민이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본 경제가 어느 정도 풍요로워졌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허구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이스케는 소세키가 '자연(自然)'이라고 이름 붙인 자기 집만의 세계에 은거하고 있다. 그리고 친구에게 양보하는 형태로 헤어진 산천대의 그림자를 쫓아 살고 있다. 그러나 산천대는 다이스케 앞에 다시 나타난다. 친구의 아이를 사산하고 그로 인해 심장병을 앓게 된 산천대는 백합꽃이 꽂혀 있던 화병의 물을 덥다며 마셔버린다. 다이스케는 백합꽃의 강렬한 향기 속에서 산치요와의 순결한 사랑을 가설하고, 거기서 '자연'을 발견하고 주객합일의 경지를 얻으려 하지만, 그것은 이성의 방종을 의미하기 때문에 육체를 가진 다이스케는 다시 자아로 돌아간다. 다이스케의 자아 특유의 세계와 생의 육체로 나타나는 삼천대의 존재는 '푸른 세계'와 '붉은 세계'로 대비된다. 일종의 은둔형 청년의 '자기만의 세계'로서의 '푸른 세계'에 '붉은 세계'의 상징으로 (다시) 등장하는 타인의 유부녀이며 아이를 사산하고 심장병에 걸린 현실 세계를 다이스케에게 들이댄다. 그것은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다이스케가 '붉은 세계'로 돌아가는 것처럼 경쟁, 합리, 계량화의 경제 세계를 나타낸다. 경제 발전과 <근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면, <근대화>라는 객관적 조건은 오히려 모든 것을 평준화하고 수량으로만 취급하는, 그런 끔찍한 파국을 지향할 뿐이었다. 원래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문명이 결국은 만든 사람으로부터 독립하여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압박해 온다. '그 후'의 백합이 상징하는 것은 분명 주객분리에 대한 불안, 신체적 차원에서의 자연회귀에 대한 욕망이다. 그러나 곧 다이스케는 그것을 '꿈'이라고 명명하며 식어간다. 주객분리가 주관의 세계 지배를 야기할 수 있고, 거기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외와 물상화를 비판하지만, 그러나 다시 주관과 객관의 구분을 말살하는 것은 사실상의 반성 능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주객합일의 전체성으로 가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이성을 놓지 않는 소세키의 '개인주의'의 일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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